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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무슨 책이 유행이었을까? / 베스트셀러의 역사

베스트셀러 어떤 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물건.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목차 🌟 #1. 국력이 곧 베스트셀러 #2.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3. 욕설은 무시하면 사라지지만, 발끈하면 홍보가 된다 #4. 예나 지금이나 야한 게 잘 팔린다 #1. 국력이 곧 베스트셀러 19세기 초 인쇄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책 출판 부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16세기 인쇄소가 하루에 찍어낼 수 있는 페이지 수는 1,250장이 최대였죠. 인쇄도 인쇄지만 그 시기에는 판매량을 정확하게 집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는데요. 따라서 판본 수 혹은 번역본의 수가 작품의 성공을 증명했죠. 그렇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강대국인 나라에서 주로 등장했죠. 16세기 - [돈키호테]로 대표되는 스페인 18세..

붕어빵 꼬리에 팥이 있어야할까? / 붕어빵의 역사

붕어 모양의 틀에 묽은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 만든 풀빵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0. 찐빵 + 와플 → 오방떡 → 도미빵 + 풀빵 → 붕어빵 붕어빵의 기원을 찾기 위해서 사전적 정의를 뜯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붕어 모양의 틀에 / 2-1) 묽은 밀가루 반죽과 / 3) 팥소를 넣어 만든 / 2-2) 풀빵 그리고 하나 하나의 기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죠. 1. 붕어 모양의 틀은 일본의 도미빵에서 왔고, 그 도미빵은 와플에서 유래합니다. 2. 묽은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풀빵은 전쟁 직후 구원 물자에서 기인하죠. 3. 팥소를 넣은 것은 찐빵에서 유래합니다. 이걸 족보화하면 다음과 같은데, 그럼 한 번 시간 순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비건만두, 찐빵 일본인들은 오래도록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삼성 반도체는 오락실이 있어 가능했다?! / 오락실의 역사

오락에 필요한 시설이 되어 있는 방. 또는 오락을 하는 방.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 갤러그는 메이드인 청계천?! 1978년 ‘아타리 브레이크아웃(일명 벽돌 깨기)’이 한국에 등장해 인기를 얻었고, 1979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도입되며 오락실도 전국적으로 확산하였습니다. 그리고 1982년 스페이스 인베이더와 갤럭시안의 계보를 잇는 슈팅 게임 '갤러그'의 등장으로 전자오락실이 대유행하기 시작했죠. 당시 갤러그의 등장으로 1979년 서울 시내에 900여 곳이었던 전자오락실이 1982년 3,570여 곳으로, 1983년에는 6,000여 곳으로 늘어났습니다. ‘갤러그gallag’는 일본 반다이 남코에서 제작한 게임으로 원래 ‘갤러가galaga’인데요. 하지만 청계천에서 해적판을 만들면서 남코Na..

북촌 한옥마을이 100년도 안됐다?! / 한옥의 역사

우리나라 고유의 형식으로 지은 집을 양식 건물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옥은 원래 없었다?! 한옥이라는 말은 원래는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옥이라는 용어 자체가 서양식 주택인 양옥과 구분하기 위한 용어이기 때문이죠. 한옥이라는 말은 1907년 정동길 주변을 기록한 약도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당시 서양의 근대 건축양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 표시한 것이었죠. 이때는 한옥이라고 하면 살림집을 의미했는데요. 우리나라의 전통건축물을 통칭하여 한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75년에 나온 『삼성 새우리말 큰사전』에서부터예요. 이 사전에서 한옥은 양옥과 대비되는 개념이자 한옥의 동의어로 ‘조선집’, ‘한식집‘이 있다고 표기되어 있죠. 현재 한옥에 대한..

우산쓰는 사람 = 차 없는 사람?

우비(雨備)의 하나. 펴고 접을 수 있어 비가 올 때에 펴서 손에 들고 머리 위를 가린다. 박쥐우산, 비닐우산, 지우산 따위가 있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막으라는 비는 안 막던 그 시절 우산 우산의 기원은 파라솔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파라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2310년 전에 조각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모습에서 볼 수 있죠. 중국에서는 기원전 25년 왕광의 무덤에서 접을 수 있는 파라솔(우산)이 발견되었는데요. 유럽에서는 18세기나 되어서야 비슷한 기능이 있는 우산이 등장하죠. 고대에 쓰였던 파라솔(우산)은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하늘, 권위, 죽음 등의 상징으로 이용되어왔어요. 우산은 신분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했는데요. 명나라 시기 황제는 커다란 붉은 ..

양모 후드티가 후드티의 근본? / 후드티의 역사

머리 부분을 덮는 쓰개가 달린 티. -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저지 섬에서 만든 저지 스웨터는 니트나 뜨게질을 한 소재로 만들어진 의복으로 긴 소매를 가진 의복을 말하는데요. 양모로 손 뜨개질을 한 것은 2천년 전부터이지만 15세기가 되어서야 영국의 저지 섬에서 니트 셔츠가 탄생하게 돼요. 따라서 저지라고도 부르죠. 이 스웨터는 축축해도 따뜻했기 때문에 주로 선원과 어부들에게 널리 사용되었어요. 스웨트 셔츠, 면으로 만든 땀복 1890년, 이 스웨터는 미국 운동선수들에게도 사용되었는데요. 땀을 빼기 좋은 옷이라는 뜻으로 스웨트 셔츠가 되었다는 설이 있어요. 하지만 스웨트 셔츠는 양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겁기도 했고, 양모는 세탁을 하면 옷이 줄어들고 말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문제점도 있었어요. 192..

👕 이게 티셔츠의 역사야? 속옷의 역사야?! / 티셔츠의 역사

'T'자 모양으로 생긴 반소매 셔츠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티셔츠의 기원은 쫄쫄이 내복 현대적 의미에서 티셔츠의 기원은 유니언 슈트(Union Suits)에서 찾는데요. 유니언 슈트는 면 소재의 상의 하의 일체형 속옷으로 1868년에 특허를 받습니다. 유니언 슈트는 원래 빅토리아 시기 여성 속옷이었던 플란넬을 대체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었는데요. 19세기 말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얻게 되었죠. 하지만 점차 인기가 떨어지고 주로 노동자들만이 입게 되었었는데요. 현재도 유니언 슈트는 판매되고 있지만, 시골 할아버지가 입는다는 이미지가 있어 주로 개그 소재로 이용되고 있죠. 우리나라의 쫄쫄이 타이즈와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이런 이미지와 더불어 일체형이라 화장실에서 단추를 다 풀어야한다는 불편함이 있..

청바지가 500년이나 됐다구?!

능직으로 짠 질긴 무명으로 만든, 푸른색 바지.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님에서 만든 데님 16세기 제노바의 코르듀로이 목화는 품질이 좋기로 유명했는데요. 이를 본 프랑스 님스 지방에서도 좋은 품질의 직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그 노력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님스 지역의 능직이라는 뜻의 Serge de Nimes이에요. 이 Serge de Nimes는 de Nimes으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데님으로 불리고 있죠. 이 데님은 내구성이 매우 강해 제노바 해군들이 입었는데요. 이것이 Jeans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어요. 제노바를 뜻하는 프랑스어 단어가 Génes이기 때문이죠. 이후 데님은 서부개척 시절 마차의 천으로 이용되었고, 미국과 영국의 전쟁에서도 전략물자를 실어 나르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었죠. 데..

언제나 큰손이 있었다 / 국내 증권시장의 역사 ②

증권의 발행ㆍ매매ㆍ유통 따위가 이루어지는 시장. 좁은 뜻으로는 증권 거래소를 이른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국내 최초의 주식 큰손 윤응상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2년 후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발표 직후 윤응상은 중앙정보부 정책연구실 행정관인 강성원 소령과 뒷거래를 하는데요. 7억 환을 주면 군정에서 민정으로 정권 이양할 때 필요한 1백억 환의 정치자금을 마련해주겠다는 거래였죠. 중앙정보부 관리관 실장인 정지원까지 합세해 세 사람은 1962년 자본금 5억 환 규모의 통일증권을 설립했고, 이윽고 일흥증권까지 설립했어요. 윤응상은 사보이호텔에 작전본부를 차려놓고 주가조작을 시작했죠. 첫 번째 작전인 대증주 매수 포지션과 두 번째 작전인 한전주 헐값 매입을 성공시켰죠. 그리고 5월 ..

100년 전에도 슈퍼개미가? / 국내 증권시장의 역사 ①

증권의 발행ㆍ매매ㆍ유통 따위가 이루어지는 시장. 좁은 뜻으로는 증권 거래소를 이른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쌀 선물거래가 3.1 운동의 원인?!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는 1896년 일본인에 의해 인천에 미두취인소가 세워지면서 시작됩니다. 미두취인소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쌀값 안정과 품질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설립했지만, 실제로는 쌀 수탈을 위한 합법적 통로 역할을 했죠. 1910년 한일합병이후 조선의 미곡과 대두의 수출이 급증하자 거래량도 늘면서 인천미두취인소는 조선과 일본을 통틀어 도쿄와 오사카 다음가는 미두거래시장으로 컸어요. 미두취인소의 특징은 쌀과 돈을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반대매매로 차익을 실현하는 청산거래 방식이라는 점이었는데요. 증거금은 거래금의 10%만 있으면 돼 투기가..